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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에세이를 만나다
흐르는 건 눈물일까, 주식일까
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사로운 이야기를 8명의 작가에게 들어봅니다.
글 방구석, <구석구석 파리>, <우울할 땐 귀여운 걸 보자> 저자
‘주식하면 망한다.' 어린 시절 어른들께 귀가 아프도록 듣던 이야기다. 당시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주식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빚쟁이에게 쫓기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했다. 이런 장면을 볼 때면 어른들은 주변의 생생한 실패담을 전해주며 공포감을 주입했다. 자연스럽게 주식은 파친코나 슬롯머신처럼 운에 맡기는 도박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런 내가 주식 시장에 발을 들인 건 2년 전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덮친 그때. 매일 아침 확진자 수를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되었는데,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는 다른 숫자가 더 자주 언급되었다. 바로 ‘주식 수익률'. 20%는 기본이고 2~3배가 넘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분명 코로나로 경제가 안 좋아지고 있다는데 코인부터 부동산까지 모든 게 오르고 있었다.

같은 말들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애꿎은 술잔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그만 오르겠지', ‘저러다 훅 떨어지겠지'라는 생각으로 초조하게 주가를 지켜봤다. 이런 나를 비웃듯 주가는 위로, 위로 끊임없이 치솟았다. 몇 달을 안절부절 쳐다만 보다 더는 못 참고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마치 한 마리의 불나방처럼.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할까. 넣는 주식마다 위로 향했다. 미국 주식 한 종목은 하루에도 2~ 30%씩 올랐고, 일주일 만에 2배가 되었다. ‘돈이 일하게 하라'는 유명 투자자의 말이 실감 났다. 자는 동안에는 바다 건너 미국에서 나의 달러들이 일했고, 아침 9시부터 원화가 열심히 일했다. 매일 늘어가는 숫자를 보니 돈이 돈처럼 안 보이고 게임머니 같았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면 ‘경제적 자유'를 이룰 것 같았다. 그동안 예금만 넣은 나를 자책하며 남은 예금을 깨서 주식을 샀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코로나는 여전하지만, 확진자 수가 의미하는 바는 이전과 달랐다. 붉게 물들었던 주식 계좌는 파란색으로 바뀌었고, 친구들과 주식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도 뜸해졌다. 자연스럽게 예, 적금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요즘 이자 많이 올랐다더라', ‘어느 은행이 좋다더라' 하며.
조용히 주식계좌를 확인한다. 흐르는 건 주식일까, 눈물일까. 큰돈을 벌어오겠다며 당당히 집을 나섰던 탕아가 예금이라는 안전한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원금이 보장되는데 매년 2% 수익률을 주는 금융상품이라니! 예금을 신청하며 1년 뒤 이자를 확인한다. 이자로 살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해 본다. 어느새 미소 짓는 나를 발견한다.

조금 쓴 맛을 보긴 했지만, 주식 투자를 후회하지 않는다. 2년 동안 급격한 롤러코스터를 겪으며 경제 관념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소중한 돈을 지키기 위해 주식 서적도 읽고, 다른 투자에도 관심을 가졌다. 예금만 차곡차곡 쌓거나 주식에만 몰두하던 시절을 지나 안전자산과 위험자산 분배에 신경 쓴다. 경제라는 건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경제였다. 아무 생각 없이 보던 뉴스를 보며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고민한다. 이런 생각의 전환은 실제로 주식으로 돈을 버는 것보다 더 값진 경험이라 생각한다.

한 여름밤의 꿈같은 수익률은 사라졌고,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현실은 언제나 녹록지 않지만, 꿈을 아쉬워할 수만은 없다. 열심히 일해서 근로소득을 쌓고, 예금의 소소한 행복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가끔 들려오는 주식 시장의 승전보에 기뻐한다. 돈이라는 현대사회에서 뗄 수 없는 무기를 위해 오늘도 현실에서 고군분투한다.
이런 이야기는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