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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에세이를 만나다
돈이 주는 지혜가 있다면
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사로운 이야기를 8명의 작가에게 들어봅니다.
글 장강명, <댓글부대>, <한국이 싫어서> 저자
독서가 중에서는 자기계발서를 불가촉천민 취급하며 경멸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데, 나는 그러지 않는 편이다. 유명한 책이 있으면 찾아 읽는다. 그런 책에 담긴 낙천주의를 좋아하기도 하고, 가끔 무릎을 치며 교훈을 얻기도 한다. 옥석이 심하게 섞여 있는 장르고, 개중에는 사기꾼의 황당한 헛소리도 있지만.

어떤 종류의 앎은 언어로 붙들기 어렵고, 아직 연구가 부족해 글자로는 거칠게 옮길 수밖에 없는 지식도 있다. 특히 자신을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필자들이 그런 글쓰기를 겁낸다. 막연한 근거로 주장을 펼쳐야 하고, 그러면 지적인 독자들의 웃음거리가 될 테니까.

한데 막연한 비유와 체험으로 엉성하게 전할 수밖에 없는 앎 중에 정말 시급하고 중요한 것들이 있다. 그 중요한 지식을 현대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선생님도 모르고, 교장 선생님도 모르고, 교과서 편찬자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끔 시골 노인이 대학교수보다 현명해 보이는 이유가 그래서다. 시골 노인은 상관관계라든가 반증 가능성 같은 걸 무시하고 거침없이 추론하고 말하니까. 물론 그의 ‘통찰’은 완벽하지 않고, 오류도 있다. 그리고 시골 노인도 시골 노인 나름이겠지.
최근에 어느 사업가의 재테크 관련 자기계발서를 탄복하며 읽고, 아내에게 추천했다. 책장을 덮은 후부터 지금까지 그 사업가의 조언을 매일 실천하고 있다. ‘물을 마셔라', ‘잠에서 깨자마자 기지개를 켜고 이부자리를 정리해라'와 같은 것들을.

책을 읽은 후, 돈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됐다. 예를 들어 이 책에는 재산에 따라 부모나 형제를 달리 대해야 한다는 조언이 있다. 재산이 10억 원이 될 때까지는 부모나 형제가 아니라 자녀와 배우자에 집중하라는 거다.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리고 형수님께 가방을, 조카에게 노트북을 사주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재산이 50억 원이 되어도 형제들에게 돈을 빌려주지 말라고 한다. 사업을 한다고 하든, 집을 산다고 하든, 뭐라든 간에. 차라리 조카들의 학비를 책임져라. 터무니없는 부탁을 하지 못하도록 미리 조금씩 베풀라. 그 모든 지원은 배우자를 통해 하라. 친척들이 내 배우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도록.

재산이 100억 원이 넘으면 그때 비로소 가족의 보험회사 역할을 하란다. 이때는 형제의 가난을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라고. 부모님을 해마다 여행 보내드리고, 그때 부모님 친구까지 초청해서 그 여비까지 대라. 부모님이 자식 자랑을 할 수 있게.
내 재산은 50억 원에 한참 못 미치지만, 이 챕터를 읽으며 오래도록 품고 있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적어도 힌트를 얻는 것 같았다. 이런 질문이다.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타인이라는 거대한 영향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사랑하고 존중하고, 또 사랑받고 존중받으면서 휘둘리지 않고 내 주체성을 지키려면?

책의 조언을 나는 ‘타인을 대하는 방법은 내 힘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다르다’고 해석했다. 타인과의 관계방정식이 복잡하고 내 힘을 당장 키우지 못한다면, 내가 신경 써야 하는 사람의 우선순위를 살펴야 한다.

이때 재산은 내 힘을 측정하는 도구이자 척도다. 그렇게 타인과의 역학 관계를 돈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해서 다른 차원에서 검토할 수 있다. 물리학자들이 소립자의 움직임을 수학으로 묘사하듯 말이다.

책에서 말하는 ‘돈’을 더 큰 것의 비유로 받아들이면 곱씹어 볼 대목들이 생겼다. 저자는 종잣돈을 여러 번 강조하는데, 그 부분은 내게 희망을 어떻게 키우고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이 또한 전부터 품어온 궁금증에 대한 유용한 답안이었다.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오늘에 충실해야 하나, 내일에 대한 대비가 우선인가. ‘카르페 디엠’이라는 키팅 선생님의 말을 따라야 하나, 이솝 우화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야 하나.
종잣돈이라는 개념은 이 쉽지 않은 고민에 놀라운 돌파구를 연다. 현재도 중요하고, 미래도 놓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내 힘의 배분 비율이다.

1년에 얼마를 모은다는 식으로 목표를 세우면 현재와 미래의 가치 대결이라는 답 안 나오는 형이상학적인 딜레마 자체에서 상당히 벗어날 수 있다. 저축 목표를 정하고, 나머지 돈으로는 알차고 즐겁게 소비하자.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고 보니, 돈이 전과 달리 보였다. 삶에서 추구해야 할 다양한 가치를 흑도 백도 아닌 관점에서 자르고 이어 붙이고 비교할 수 있게 만드는, 굉장히 유용한 사고 도구 아닌가. 우리가 인생을 풍요롭고 슬기롭게 살려면 조금씩 철학자도 되어야 하고 운동선수도 되어야 하듯, 경제학자와 경영인의 관점도 몸 안에 탑재해야 하는 것 아닐까.

돈의 이러한 개념적 유용함을 모르면 오히려 해를 입게 되는 것 같다. 돈을 가치를 다루는 도구로 여기지 않고, 그 자체로 중요한 목표라 믿으면 금전의 노예가 된다. 반면 돈이 그런 도구임을 부정하고 돈을 생각하는 일조차 멀리하는 사람은 알맹이 없이 번드르르하기만 한 착한 구호의 노예가 되기 십상이다. 조선이 망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고 나는 본다.
이런 이야기는 어때요?